🏃 2021년 회고 : 개발자가 되었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20년도 말에 퇴사를 하고 2021년은 취업준비로 시작해서 취업으로 끝이 났다.
앞으로 열심히 하자는 의미로, 또 올챙이 시절을 잊지 말자는 생각으로 회고록을 작성한다.
1. 시작
2021년 7월부터 개발공부를 시작했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해서 소설을 쓰다가 졸업하고 영화관 직원으로 일했다. 꼭 소설가가 되겠다는 강한 신념은 없었지만 나름 진지하게 소설을 공부했기 때문에 절필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는 다소 허무한 감정이 있었다.
영화관 매니저 일은 적성에 맞았다. 현장 관리와 인사 업무(아르바이트 생의 서류/스케쥴/면접/서비스 교육)를 맡았었는데, 스무 살 때부터 투잡 쓰리잡씩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동아리장이나 학생회장 일을 했던 경험사항과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성향과도 잘 맞았다.
그리고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었을 때부터 포기하기로 결심했던,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대기업이었고 정규직이어서 미래에 대한 불안도 크게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바뀌는 때가 있었으니, 바로 코로나였다.
5,000명씩 들어오던 주말 객수가 코로나가 터지고 300명으로 줄었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무급휴무를 권장해서 한 달에 4일 씩 쉬면서 휴식을 취했다.사실 이때까지도 별 불안감은 없었으나 다음 달에는 달에 8일의 무급 휴무를 사용했고, 40명이 넘던 아르바이트 생이 10명 아래로 줄었다. 서비스 리더였던 내가 아르바이트생들 한 명 한 명 면담하며 스케줄 협의를 하고 퇴직을 권장했고, 쉽지 않은 일이었다.
텅 빈 영화관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건 슬픈 일이었다. 고객들, 동료 매니저님들, 친구 같이 지내던 아르바이트 사원들, 그 많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회사를 나가지 않아 개인 시간이 많아져서 생각을 많이 하다가, 결국 퇴직을 결정했다.
새로운 직업은 회사 그 자체에 목메이지 않고, 9-6의 주간 근무시간을 가지고. 앞으로의 밥벌이에 문제가 없을 만한 직업이었다. 고민 끝에 선택한 직업군은 전기였다. 또, 전기직종 사기업에서는 나이 기준을 충족하지 어려울 것 같아(28세) 취업하는 회사 형태는 공기업으로 정했다.
2. 취업 준비
공기업은 대부분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했기 때문에 가산점을 위해 필요한 자격증이 있어, 본격적인 취준 활동을 시작했다. 전기기사 응시조건이 필요해서 정보처리기사를 취득했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울 때쯤 대입 연산자의 개념이 이해 가지 않아서 C언어 학원을 다녀야만 했다. 관련 수험서를 종류별로 사고 가장 중요한 책은 7번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한국사와 토익을 취득했다.
이제 전기기사가 남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전기 공부가 지독하게 재미 없었다는 것. 전기기사 취득에 권장되는 학습방식은 기출 반복 풀이로 문제은행을 정복하는 것이었는데, 이 방식으로 학습하는 게 나랑 맞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이해를 모두 하고 넘어가기에는 비전공자에게 전기는 너무 큰 벽이었고, 좋은 멘토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평생 공부라곤 해본적없다가 6개월 몰아서 공부를 해버린 탓에 체력이 끝난 것 같기도 하다. 슬슬 모아둔 돈이 바닥치고 있었고 스스로 정한 입사 마지노선 기간은 6개월이 남았다.
문득 개발자가 떠오른 이유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때문이었다.
정보처리기사를 공부할 당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몇 개 들어가있었는데 거기서 현업 개발자들( 돌아보면 그들은 모두 나와 같은 SI 개발자였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주로 투정이었지만 당시에는 내가 알아 듣지 못하는 개발 용어와 그들의 전문직스러운 투정들이 꽤 멋있어보였다.
뉴스 기사들을 읽어보다가 컴공과를 나와서 SAFFY를 수강 중이던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 친구는 단칼에 해보라며, 본인이 졸업 직후 다녔던 국비학원을 추천해줬다.
3. 국비지원학원
학원을 선택하고도 당연히, 불안은 남아 있었고 정말 학원을 갈까 말까에 대해 끝까지 고민 했다. 개발 직무를 선택한 게 도피가 아니었을까, 평생 해야 하는 개발 공부를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러다 생활코딩의 유튜브를 보다가 문득 결심을 했다. 컴퓨터 공학은 하나의 거대한 시다, 라는 말이 유독 크게 들렸다.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는 건축을 땅 위에 시를 짓는 일이라고 표현 했고, 소설가 김언수는 건축가와 요리사가 비슷한 일이라고 말했다.
수없이 많은 선택과 갈림길에도 불구하고 결국 본질적인 차이는 없는 것이 아닐까(김언수_캐비닛), 라고 생각한다면 결국 소설과, 시와, 개발은 비슷한 일이니까 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이동욱 개발자 님을 유튜브에서 보고, 블로그를 쭉 살펴보면서는 개발이 대체 뭐길래 저렇게까지 사람을 매료 시키는가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그렇게 2021년 7월부터 개발 공부를 시작했다.
결심을 내린 뒤에 생활코딩의 WEB 기초 강의들을 정주행하고, 학원을 수료했다. 퇴근 길은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고 나는 학원에서 저녁 늦은 시간까지 남아서 자습을 종종 했는데, 그 시간에도 그제서야 수원까지 퇴근하는 사람들이 가득 했다. 나도 저들처럼 늦은 서울의 불빛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하고 감상적인 생각을 자주 했다. 현업에 나와 있는 지금으로썬 절대 늦은 서울의 불빛을 채우고 싶지 않지만.
학원을 수료하고 느낀 점은 개발은 확실히 재밌다는 거. 그리고 같이 개발을 공부하는 친구들이 생긴다는 것. 하지만 국비교육의 한계를 확실히 느끼기도 했다. 짧은 기간에 속성으로 취업을 시키기 위한 커리큘럼이니까.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학부생들이 4년을 투자해 배운 CS 지식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아득하다.
로버트 마틴은 클린 코더에서 프로 프로그래머라면 개발에 업무 시간을 제하고 주 20시간을 별도로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주 40시간을 근무하고 남은 주 20시간 즉, 하루 3시간은 온전히 자신의 개발 향상에 투자해야 한다. 수료를 하고 나서 읽은 책이지만 돌이켜보자면 나는 국비 기간 동안 이 지침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수업을 수강한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쓰지 않는다. 성실히 수업을 들었고 끝나면 남아서 공부했다. 전공자들도 있었지만 높은 순위로 수료했다. 하나의 웹 프로젝트를 팀원들과 완주했고 중간중간 동기들과 술을 마셨다.
4. 면접과 취업 이야기
학원에서 협약사에게 공통 이력서를 배포했다. 나는 스무 군데 정도 면접 요청이 왔고 모두 응했다. 대부분이 SI 였고 가끔 솔루션 업체가 있었다. 알고리즘 코딩 테스트는 없었고 종종 필기시험을 쳤다. 문제나 면접 질문으로는 이진 탐색 코드 / 깊은 복사와 얕은 복사 / 오버로딩과 오버라이딩 / HTTP 메소드 / SQL / MVC 패턴 / 스프링 개념 / 프로젝트 관련 등이 있었다. 하지만 기술적인 비중보다는 인성을 점검하는 부분이 더 많았다.
스스로 몇 가지 필터링을 해서 두 개의 기업을 남겼다. 두 기업은 연봉 차이가 10% 정도 있었는데, 200명 규모의 다양한 솔루션을 보유한 회사의 SI 사업부와 70명 규모의 음성 인식 솔루션을 가진 상장사였다.
음성 인식 솔루션 회사가 연봉이 더 높았는데, 학원에서 더 추천해주고 건물이 더 크고 넓으면서 사내 카페테리아가 있는 SI 회사로 갔다.
5. 회사 생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입사 3주차인데, 아직 프로젝트에 투입 되지 않았다. 본사에서 열심히 공부 하고 있다. 급여를 받으면서 공부를 한다는 건 회사에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일이다.
출근 하고 며칠 동안 사장님이 애자일 방법론에 대한 자료집을 주시면서 열강을 해주셨다. 애자일이 어떤 식으로 좋은지, 어떤 방법론이 있는지, TDD의 중요성이 무엇인지. SI에 대해 막연하게 품었던 불안감과 선입견이 조금 줄어들었는데... 과연.
입사 동기들은 먼저 발령을 받아 본사를 떠났는데, 놀랍게도 Spring Boot와 JPA를 사용했다. 레거시한 spring에 Mybatis를 사용할 줄 알았는데...
빨리 프로젝트에 투입 돼서 소스 코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자바다 를 첫장부터 정독하고 있는데, 나는 Java를 하나도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스프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려움을 느꼈는데 자바 기본서를 읽고 있으니 사실 내가 몰랐던 건 스프링이 아니라, 자바 였다!
인프런으로 김영한 님의 스프링 수업도 듣고 있다. 학원에서 자습할 때 자주 찾아들었던 수업인데, 당시에는 잘 몰라도 우선 머리에 때려 놓자! 라는 느낌으로 봤었다. 놀랍게도, 지금은 이해가 된다. JUnit을 사용하거나 AOP를 적용 시키는 부분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되지만, 6개월 뒤의 나는 다시 또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희망차게 생각한다.
6. 2022년은,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많고, 공부해야 할 것도 많다. 지난 5개월 동안 조금 지치기도 했지만 다시 한 번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계속해야지. 계획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면 얼마나 좋겠느냐만은, 그렇지 못함도 염두에 두고 최선을 다해야지.
-2021년 회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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